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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울증 치료기

나의 조울증 치료기(2)

 

기억의 재구성

 

 

 

연재를 계속하기에 앞서, 먼저 부연 설명을 약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번에 올렸던 나의 조울증 치료기 - 1편도 그렇고, 지금 쓰고 있는 글이나 앞으로 쓸 글도, 전적으로 저의 기억에만 의지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뒤죽박죽인 기억에서만 가져오거나, 상상으로 글을 쓰면 그야말로 '소설'이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조울증 샘플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테고요.

그래서 저는 기회가 될 때마다 기록을 따로 남겨 두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기억의 누락이나 혼란이 극심한 극우울증이나 극조증 시기에는 기록을 하지 못한 경우도 많아서, 이런 경우에는 이메일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메일을 한 계정으로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정신이 맑을 때 (시간이 다소 걸리긴 하지만) 메일함 전체를 정리하면서 보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증과 울증은 언제 있었는지를 의외로 정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조각난 기억의 틈을 메일로 채운 것을 바탕으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메일을 조울증 관리에 사용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따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잡설이 너무 길었네요. 그럼 ‘나의 조울증 치료기’, 2화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입원과 퇴원

 

(다음 웹툰리그에 연재했던 조울증 만화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라고 저번 글 끝에 말씀드리긴 했습니다만, 사실 처음 조울증(혹은 다른 정신 질환)을 진단받은 환자 본인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20여 일을 개방 병동에 입원해 있었는데, 당시 조증 상태였으므로 기분만은 굉장히 유쾌했습니다 - 정신병으로 진단받고 입원까지 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지요. 다만 진단과 입원 초기의 반복적인 검사와 문진은 지겨웠고, 단조로운 병동 생활이 계속되자 나중엔 얼른 퇴원하고만 싶었지요. 아마도 저는 ‘병명을 알았으니 치료는 식은 죽 먹기겠지’라고 근거 없는 밝은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어 내려가시면 알겠지만, 조울증은 절대, 결코, 만만한 병이 아닙니다. 특히 저처럼 증상이 심한 환자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죠.

입원 치료의 또 다른 부정적인 면은 ‘비용’ 문제입니다. 당시 대학병원에 입원했는데, 입원비에 대해서 아버지는 별 말씀을 안 하시긴 했지만, 수백만 원 수준의 비용이 들어간 거로 알고 있습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 하는 경우라면 경제적인 부담은 더욱 커집니다. 조울증 환자는 스스로 돈을 전혀 벌지 못하거나, 그런 시기가 많은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치료 비용은 결국 가족의 부담으로 돌아가기 쉽지요.

아무튼, 저의 조증 상태가 다소 진정될 즈음 퇴원을 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외래 진료와 처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통원 치료, 그리고 우울증

 

조울증은 평생을 두고 ‘관리’해야 하는 부류의 병입니다. 흔한 비유로는 당뇨병같이 계속 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환자에 따라 재발 빈도, 정도도 다양하지만, 어쨌든 잘 관리하지 않으면 재발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방심하면 자기도 모르게 조울증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퇴원하면서 이미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병원을 찾았고 병식이 있었으며 이제 퇴원도 했으니 많이 나았다는 자신감(?)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결과, 이제부터 이어질 내용은 나의 조울병 ‘치료기’가 아닌, 조울병 ‘재발의 기록’에 가깝게 되고 맙니다.

여러분은 절대(!) 조울증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본인이 환자이든, 아니면 가족이나 지인이 환자이든 말입니다.

 

퇴원 후 꽤 시간이 지나, 다시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하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취직할 때는 조증 상태이다가 회사를 조금 다니다 보니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됩니다.) 우울증이 찾아오자, 출근 자체도 힘들었고 업무 능력도 현저히 떨어져, 결국 근무태도 불량과 무단결근의 악순환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말았습니다

약을 꾸준히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이 와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약을 먹는다고 무조건 괜찮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때 처음 눈치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은 간신히 숨만 쉬고 살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습니다. 이번엔 우울증이 꽤 오래 갔는데, 제 경우는 한 번 우울증이 오면, 적어도 4~6개월 이상은 지속하는 편이라 참 힘듭니다.

 

우울증이 한 번 왔으니 다음에 올 것은? 네. 다시, 조증입니다.

 

 

또다시 찾아온 조증과 약 중단

 

지금까지 겪었던 중 가장 강도가 세고 기간도 긴 조증이 찾아왔습니다.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심지어 ‘이 죽일 놈의 병’ 조차도 저의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습니다. 약을 먹었음에도 우울증과 조울증이 여지없이 반복되었다는 점도 약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데 한 몫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많은 조울증 환자가 조증 시기에 약을 끊습니다. 우울한 시기의 지친 마음에 비교하면 조증의 활기와 들뜬 상태가 너무 좋기 때문이지요. 약간의 과장을 더해 비유하자면, 마약을 한 것처럼 기분이 들뜬 상태가 됩니다.

 

 

 

‘약 없이 조울증을 이겨내겠어!(=의지의 문제다)’ 

 

이런 생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인지 지금은 잘 압니다만, 그때는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외래 진료와 약 복용을 중단했습니다(…)

당시의 상태는 아주 심한 감정 기복과 기억의 혼란, 약간의 망상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두뇌가 너무 빨리 회전해서 늘 정신이 없고 머릿속이 피곤했습니다.

 

단편 애니메이션 지원사업 기획, 애니메이션 회사 설립을 위한 신용보증 대출, 사업에 꼭 필요하리란 생각이 들어(당시에는 좋은 차가 사업을 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논리가 머리에 박혀 있었습니다) 미니 쿠퍼를 캐피탈 대출로 사는 등… 여러 가지 일(사고)을 동시다발적으로 벌이고 씀씀이가 말도 안 되게 커졌습니다.

 

이때를 생각하면, 가족들이 옆에서 보고 있음에도 말려 주지 않았다는 점이 못내 아쉽습니다. 조울증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인 탓도 있었겠지요. 아니, 어쩌면 알았어도 말릴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로 저는 몸과 마음이 그 끝을 모르고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이 시기에 벌인 일 중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 애니메이션 회사에 계약직으로 취직했다가, 관리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일을 대충 마무리해 주고 그만둬 버렸고,
  • 애니메이션 팀에 참여한 뒤, 팀 대표와 갈등이 발생하고 팀이 해체되기도 했으며,
  • 공중파 방송 모 예능 프로그램의 일부 삽화 작업을 맡았는데 신임 PD와 트러블이 있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저의 모습은 마치 ‘싸움닭’ 같았습니다. 어딜 가든 사람들과 문제가 일어났는데, 사람들의 사고가 저의 생각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느낌에 답답해 했으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갈등이 생기든 말든 개의치 않고 관철하려 했습니다.

단기간에 정말 많은 일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정착 비슷하게 한 것이 절친의 친구가 개원한 보습학원의 수학 강사 일이었습니다. 이때는 조증이 조금 잦아들기도 했고, 학원 선생님들과 마음도 맞아서 비교적 편안하게 일했습니다.

 

 

안녕, 우울증. 또 너야?

 

거의 2년 가까이 계속된 조증은 마치 폭발을 멈추지 않는 활화산 같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저장된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조증에는 거의 대부분 우울증이 따라옵니다(그것을 겪는 본인은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지요). 너무 무리했으니 이제 좀 쉬자, 라는 몸의 신호일 수도 있겠죠.

그렇게 또다시 우울증이 찾아왔고, 그 우울증은 강렬했던 조증의 반동으로 아주 깊고 어두웠습니다.

사실 조울증 환자는 바보거이나 미련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신경계 이상으로 일반인에 비해 기분 조절이 안 되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조증과 울증의 중간 쯤 어딘가, 정상적인 상태가 되었을 때는 자신이 한 실수들에서 엄청나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 부끄러움과 자괴감은 우울증을 강화합니다.

이 우울증 시기에 든 생각 하나는, 나는 과열과 셧다운을 반복하는 컴퓨터 같다는 것입니다. 오버클러킹한 CPU를 무리하게 돌리다가, 결국 한계를 넘고 어느 순간 '팟'하며 꺼져버리는...

 

 

 


 

2화를 마무리하며

 

2화에서 너무 달려버린 탓에 이다음 글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조금 난감해지고 말았네요. 그래도 열심히 고민해 보겠습니다.

 

(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