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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증을 겪은 유명인

조울증을 겪은 연예인(1) - 캐리 피셔

캐리 피셔는 우리에게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로 더 잘 알려진 배우입니다.

조울증 환자였던 그녀는 자신의 병을 공개하고 솔직한 경험담으로 조울증을 알리는 데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아래 기사는 2004년 bpMagazine 가을호에 실린 인터뷰 기사입니다.

[원문 사이트 링크] https://www.bphope.com/hollywood-kid-carrie-fisher-and-her-best-awful/



할리우드 키드 캐리 피셔와 최선의 끔찍한 일


캐리 피셔가 인생에서 최고로 끔찍한 시기 - 중독, 정신증 에피소드, 입원과 회복에 관해 이야기하다


Photo: MICHAEL LAMONT


글: David Staba

 


인생 대부분을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살았던 캐리 피셔는 잠들 수 없던 밤이나 할리우드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그만둘 수 없던 시간을 생각했다. 그래서 또한 그녀는 "기분이 들뜬" 상태 사이의 파괴적인 우울증, 가정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과 재활 센터들에 오고 간 일을 생각했다. 첫 조울증 진단을 받고 15년이 지난 1997년에 정신증 에피소드가 나타난 뒤에야 캐리는 꿈나라 기준으로 봐도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깨달았다.


유아기에 부모가 세간의 이목을 끄는 이혼을 한 것으로부터 자신의 약물 남용과의 투쟁에 이르는 그녀의 다른 시련과 마찬가지로, 피셔는 마침내 조울증과의 전쟁을 그녀의 공인으로서의 한 부분으로 하기로 선택했다. 캐리는 2000년 TV 프로그램 <20/20>에서 다이앤 소이어(Diane Sawyer)와 인터뷰를 통해 조울증을 겪고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해 전 세계에 알렸고, 그녀는 자신의 정신 질환에 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최고 유명 인사 중 한 명이 되었다.


시련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더 오래 걸렸다. 첫 베스트셀러 <Postcards from the Edge>가 10년도 더 된 약물 재활 경험에 바탕을 두었다면, 그녀는 자신의 정신증 에피소드와 입원을 한 맥락으로 쓰면서 한편으론 정신병동을 새롭게 다루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개성적인 재치를 반영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또 하나의 거의 변질되지 않은 자서전이 나오게 되었다. <The Best Awful>은 지난 1월에 출간되었다.


"이 병을 우스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거로 생각했어요." 피셔는 베벌리 힐스의 자택에서 다리를 꼬고 적당히 낡은 가죽 의자 팔걸이에 기대며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죠. 조울증이란 상황에 대처하는 삶은 우스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캐리 피셔는 고통에 대처할 때 항상 그것을 유머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할리우드 크기의 몫 이상의 개인적인 혼란을 겪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약을 끊을지 결정하는 것은 내 문제라고 진심으로 느꼈어요." 피셔는 말한다. "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녀의 명성의 씨앗은 물려받은 DNA를 따라왔는데, 어머니 데비 레이놀즈(Debbie Reynolds)의 작은 몸과 아버지 에디 피셔(Eddie Fisher)의 검은 머리나 갈색 눈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유명세는 자주 들쭉날쭉하고 항상 순간적이었던 재치를 통해 성장했다. 방어 메커니즘은 유아기에 형성되었는데, 아버지가 어머니를 떠나 가장 매력적이던 시절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갔을 때였고, 이 사건은 세계적인 머리기사가 되었다. 레이놀즈는 자신의 영화 경력이 시들해지면서, 그녀는 딸과 아들(토드)을 차에 태우고 나이트클럽 연기자로 지방 투어를 다녔다.


"나는 이런 종류의 어항 안 존재로 자랐고 그래서 생각하길, 만일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하면, 내가 먼저, 그리고 더 잘 말하려고 했어요. 상황을 지배하려고 노력하는 나의 방식이에요. 당신이 문제를 통제하거나 아니면 문제가 당신을 통제하는 거죠." 캐리는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웃음을 찾는 것에 대해 말한다.


작가로 전향하기 전 캐리 피셔는 여배우이자 대중 아이콘이었다. 그녀의 강렬할 정도로 지적인 관점은, 엄청나게 흥행한 스타워즈 삼부작을 통해 컬트 히로인 반열에 올려진 냉소적인 레아 공주 역과, 우디 앨런의 영화 <한나와 그 자매들> 그리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그녀가 표현한 지적 통렬함을 주는 씁쓸한 절친 역을 연기에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작가로서의 목소리가 드러난 것은 1987년 소설 <Postcards from the Edge>를 썼을 때였고, 이 작품은 영화로 각색되어 흥행했고 메릴 스트립이 출연했다. <Postcards>에서 캐리의 문학적 분신으로 처음 등장한 수잔 베일은 비슷한 종류의 약물을 과다복용하고, 재활 과정을 거친 후, 삶을 다시 시작한다.


1980년이 끝나기 전에 피셔는 또 다른 슈퍼스타, 가수이자 작곡가인 폴 사이먼과 결혼생활을 하고 이혼했다. 또한 산발적인 치료를 받았는데, 이 중에는 수년 전 그녀가 24세일 때 최초이자 정확하게 조울증을 진단한 정신과 의사와 보낸 시기도 있었다.


캐리는 여러 의사가 처방한 약 투여 일정을 대개 무시했고, 이는 불법 약물 복용이 큰 이유였다고 인정했다. 마리화나, LSD, 코카인 및 다양한 처방 약을 섞은 것을 알코올로 들이켰다. 마약 과다 복용이 최고조에 달하고 재활 시설을 들락거리게 됐다. 캐리 피셔에게 절제는 안정과 같은 의미가 아니었다.


"나는 생각했어요. '나는 마약 중독자야. 좋아. 그게 내가 이런 식으로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이유가 대한 될 테니. 그러니까 나를 좀 쉬게 해 줘,'" 하고 그녀는 말한다. "'나는 마약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가 될 테니,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둬.' 하지만 일 년 후, 내 상태는 더 나빠졌어요." 캐리는 재활 치료와 1997년의 정신증 에피소드까지 이어지는 기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말한다. "예를 들면, 논쟁 중에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어요. 그녀는 '이 망할 년' 또는 그 비슷한 말을 했고, 그러면 나는 세 시간 동안 울었어요. 나는 멈출 수가 없었어요. 나는 교통 체증에 갇히면 너무 화가 나서 전화기를 들어 핸들을 내리쳤어요. 나는 그게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나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이것(약물치료)을 계속하겠지만 그만둘 권리도 남겨둘 것에 합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겠어요.' 나는 굉장히 갈등하고 있었어요. 마치 이런 기분이 들었는데, '당신은 원래 목적인, 내 기분을 더 좋게 만드는 약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어. 하지만 이제는 내가 다른 약을 먹기를 바라는군.' 나에게는 '전부 약이긴 마찬가지잖아' 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어요."


1990년대에 들어와, 피셔는 연기를 줄이고 집필을 더 많이 했고, 두 권의 베스트셀러를 더 펴냈는데, 사이먼과의 관계에 바탕을 둔 1991년 작 <Surrender the Pink>와 1994년 작 <Delusions of Grandma>였다. 또한 그녀는 영향력 있는 할리우드 에이전트인 브라이언 로드(Bryan Lourd)와 장기적인 관계에 정착해 1992년 딸 빌리를 낳았다. 캐리가 약물 남용 문제를 뒤로하고 어머니로서의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드는 그녀를 떠나 다른 남자에게 가겠다고 선언했다.


"수잔 베일에겐 문제가 있었는데, 그건 그녀가 제일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게이라고 말하는 것을 잊은 남자와 아이를 낳은 것이다." 캐리는 <The Best Awful>의 첫 문장에 주인공이자 그녀의 분신에 관해 이렇게 썼다. "그는 그녀에게 말하는 것을 잊었고, 그녀는 알아채는 것을 잊었다." 로드가 성 정체성을 밝히자 피셔의 자아상이 뒤죽박죽되면서, 기분 변동은 심해졌다.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서, 그녀는 10년 이상 때때로 해온 정기적인 약 복용을 결국 완전히 그만둬 버렸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끊임없이 말하게 되었다.


"나는 결코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조증이 지배하기 시작하려던 시기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렇게 멋질 수 없었어요. 단어를 떠올리느라 길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었어요. 생각, 연결, 농담, 어떤 것이든요." "단극성이거나 혹은 감정의 극단이 없는 사람은 나나 다른 조울증 환자를 부러워할 것이 틀림없는데, 왜냐하면 기분이 떠오르는 것은 최고이기 때문이죠. 어떤 마약보다, 세상 어떤 것보다 말이에요."


하지만, 작가 자신이나 그녀가 창조한 문학적 인물 어느 쪽도 그런 취한 듯한 기분은 절대 지속하지 않았다. 피셔는 말하길, "종종 그 사람이 아니고 싶을 때가 있었어요. 당신은 저녁 식사 파티의 인질을 붙잡아 두고 싶지 않겠죠. 그리고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나는 사람들을 여덟시간씩 전화통에 붙들어 놓곤 했어요. 조증이 심할 때면, 일종의 뻔한 길이죠. 아시겠지만, 나는 산 위로 높이 날고 있는데 지나치게 빨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연결이 안 되기 시작했어요. 문장이 말이 안 돼요. 더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잠들지 못하고 나에 대한 신뢰가 없어졌어요." 그 마지막 증상이 그녀와 딸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이 문제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할 시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약을 끊을지 결정하는 것은 내 몫이라고 진심으로 느꼈어요." 피셔는 말한다. "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의 변덕스러운 행동에 딸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The Best Awful>의 수잔의 딸 허니와 꼭 닮은, 학교 갈 나이가 다가오는 활발한 11살짜리 긴 갈색 머리에 왼쪽 눈꺼풀에 주근깨가 있는 딸 때문에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아이가 있다면 훨씬 쉬운 결정이에요. 시간이 지나서 누군가의 눈에 그런 인상을 남기고 싶을 리 없잖아요."


피셔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완전한 정신병적 에피소드 후에야 그 도움을 받게 되었다. <The Best Awful>에서, 수잔의 정신 상태는 거의 완벽한 스파이크 형태를 따르는데, 진통제 처방전을 사려고 타투 아티스트와 함께 티후아나를 향하는 여행 중에 그녀의 조증은 점점 심해지고, 이후 우울증으로 자유낙하하여 결국에는 정신병동에서 지내게 된다. 캐리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만들고자 자신의 시련을 간결하게 나타냈고 몇몇 장면을 창조했다고 말한다. 서문은 이 책을 "게으른 사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였다"고 묘사한다. 그녀는 말한다. "그럴듯한 책이냐고요? 아주 그렇죠. 나는 방향을 약간 틀었을 뿐이에요. 재미있는 사실은 뒤집어 보면 어느 정도는 그렇게 극적이지도 않다는 것이죠. 마침내 정신 병원에 가게 되었을 때,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고 벌어지는 일에 대해 무력했어요. 그냥 끔찍했어요."


"나는 이런 종류의 어항 안 존재로 자랐고 그래서 생각하길, 만일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하면, 내가 먼저, 그리고 더 잘 말하려고 했어요. 상황을 지배하려고 노력하는 나의 방식이에요. 당신이 문제를 통제하거나 아니면 문제가 당신을 통제하는 거죠."


캐리는 소설에 자신의 입원을 시간순으로 기록하는데, 그중에는 6일간 계속된 불면증을 고치려고 고용량의 진정제를 투여한 탓에, 잡지에서 그림을 오려 콜라주를 만드는 간단한 작업을 하지 못해 느낀 좌절감을 묘사하는 서술 과정을 포함한다. 캐리가 그 경험에 대해 한 말이다. "그건 전부 사실이에요. 나는 그걸 할 수가 없었어요." 그녀의 기분과 함께 약물치료 관리가 안정되자, 자신의 경험을 말로 옮기기 시작했는데 그녀가 아는 방법인 글로 적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상황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으니, 아시겠지만, 모든 게 (책) 소재예요. 글쓰기 소재가 없다는 것은, 문제가 생겼다는 거죠. 오랫동안 나는 문제 속에서 지냈고, 그래서 소재를 찾을 수가 없었죠."


작가로서 슬럼프가 해결되었을 때, 그녀는 <20/20> 방송과 정신 건강 지지자 모임들에서 강연도 시작했는데,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다. 현관 계단에 앉아 수학여행에서 돌아올 빌리를 기다리며 그녀는 어떤 개인적 지향점이 된 강연 이벤트를 떠올린다. 캐리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나는 이벤트에 가서 상을 받았는데, 그에 대해 웃기게 말했어요. 강연 후에 한 여자가 다가와 기분이 상했다고 했는데, 그녀의 남동생이 조울증이었기 때문이었죠. 무대 뒤 마무리를 그녀와 하면서 남동생이 조울증인 게 전부가 아니라, 그녀의 언니는 암에 걸렸고, 어쩌다 보니 이런 모든 일들을 통해 그녀가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고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진짜 도달한 이야기는 다른 주제였는데, 나는 이 여자와 같이 울면서 무대 뒤 마지막 시간을 보냈고, '내가 나서고자 한 것이 이런 일인지 확신이 안 선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저하든 그렇지 않든, 캐리는 유명세와 조울증을에 대한 특별한 솔직함을 통해 그녀는 같은 여정을 견디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옹호자이자 롤모델이 되었다. "이런 것들의 가장 좋은 부분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좋은 의사가 없고, 자살을 생각하는 많은 이들이 내게 다가올 수 있게 한다는 점이고, 내가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녀의 말이다. "만약 내가 조울증 치료 포스터용 인물로 보인다 해도, 그건 그것대로 괜찮아요."


캐리는 그녀가 오랫동안 싫어했던 내면의 할리우드 키드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말하길, "이 도시는 무척 바보스러울 수 있어요. 내 어머니가 했던 제일 웃긴 얘기가 있는데, '음, 너도 알다시피, 그는 할리우드로부터 잊혔단다' 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맞아요, 그게 할리우드의 방식이죠. 그런 게 헐리우드의 직업들이죠." 오랜 시간 끝에 그런 것은 캐리에게 괜찮은 일이 되었는데, 문학 커리어에서 정확히 LA의 전형적인 모습을 풍자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불행해지지 않게 될 사람은 당신 자신 뿐이에요. 나는 여기 살아요. 내 딸이 여기 살면서 학교에 다니고, 아이 아빠도 여기 살지요. 나는 장소 그 자체보다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날카로운 위트와 연예계 안팎에서의 생활은 그녀의 유명인사 인터뷰 쇼를 더욱 인상적이게 했는데, Oxygen network의 <Conversations from the Edge>나, 평범한 모습으로 나온 <Bravo's Celebrity Poker Showdown>과 같은 프로그램이다. 캐리는 독특한 배경 때문에 Home & Garden Network의 프로그램 <The Homes that Made Hollywood>의 이상적인 진행자이기도 하다. 캐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 장소에 어떤 역사가 있다면 나는 그곳을 좋아해요. 왜냐하면, 그런 곳이 너무나 드물기 때문이죠."


그녀의 집에는 영화의 역사가 스며있다. 불규칙한 목장 스타일의 벽돌집은 한때 전설적인 여배우 베넷 데이비스, 그리고 의상 디자이너 에디스 헤드의 집이었다. 캐리의 손길이 닿아, 집 장식은 아름다움과 코믹한 요소가 섞여 있다. 진입로로 통하는 나무문은 "게를 조심하시오"라는 경고 문구가 적혀 있다. 그녀의 집 뒤 손님용 별장으로 향하는 언덕길에는 "여기서부터는 옷을 입는 것은 선택 사항입니다"라는 표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붕으로부터 뒤 베란다까지 일렬로 정교하고 섬세하게 걸린 일본식 랜턴을 따라가면 갑자기 거대한 종이 반죽 닭 모형을 마주치게 된다.


Oxygen 케이블 쇼에서 캐리는 베벌리 힐즈 옆집에 사는 그녀의 어머니를 두 번 인터뷰했다. 그녀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아졌으며, <Conversations Form The Edge>에서 아버지와 인터뷰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캐리는 TV에 정기적으로 출연하지만, 여전히 영화 작품, 그중에서도 지금껏 가장 큰 흥행수익을 기록한 몇 편의 영화 배역으로 제일 유명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을 배우이기보다 작가로 생각한다.


"연기에 있어서는 내게 실제 통제권이 없었어요" 그녀의 말이다. "연기는 누군가가 나한테 일을 주어야만 하는데 그게 싫어요. 그리고 연기는 내 외모와 상관이 있어요. 내가 자신 있는 영역이 있는데 외모는 거기에 해당하지 않아요. 나는 내 외모를 좋아한 적이 없었어요. 한 가지 점에서, 나는 자신감을 가져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여전히 그녀는 가끔 영화 배역을 맡기는 했지만, 가장 최근에는 정신분열증을 가진 미국 소녀와 친구가 되는 아이 엄마 역할이었고, 그녀는 자신의 연기 경력을 은하계 너머 아주 멀리, 오래전에 일어난 일 같이 말한다. 많은 배우가 자신을 판에 박힌 연기자로 보이게 할 법한 역할을 언급하면 신경을 곤두세우는 반면, 캐리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연기가 스타워즈 시리즈의 두 번째 에피소드, <제국의 역습>이라고 말한다. "그 작품은 '영적인' 것이었어요."


"나는 우디 앨런의 영화(<한나와 그 자매들>)를 좋아했어요. 출연분이 많지 않았는데도요. <블루스 브라더스> 제작 과정은 즐거웠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도 좋아해요." 하지만 그녀가 곧바로 잊으려고 했던 배역들이 있다. "정말 끔찍해서 바로 호주로 바로 떠나려고 했던 이 영화가 있었어요. 조증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는데, 호주로 간 덕분에 약을 끊을 수 있었어요. 영화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형편없었어요. 안 본 영화가 있었는데, 체비 체이스와 출연한 <무지개 아래에서>라는 영화였어요. 정말로 졸작이라는 생각이 들고, 나쁜 경험을 했어요. 우리는 모두 비난을 받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심하게 욕을 먹은 것 같아요."


자신의 험난했던 시절에 대해 지금 웃어넘기지만, 그녀는 조울증에 대처하는 핵심은 절제라고 말한다. "취하지 않은 상태가 아닌 이상 누군가가 조울증인지 알 수조차 없기 때문에 그걸 치료하는 게 먼저인데, 왜냐하면 모든 종류의 약물과 알코올 중독은 조울증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캐리는 가족과 친구의 지원과 격려가 약물 남용을 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믿는데, 그녀의 어머니와 친구들, 그리고 빌리의 아버지인 브라이언이 그 역할을 했다. 캐리는 말한다. "아이의 경우, 당신이 (치료를 받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 있어요. 만약 당신의 아이나 친구 또는 배우자가 이 병의 증상을 보이는 경우,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을 연결해 줄 수 있다면 그들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이 '잘못되었거나' '나쁘거나' '바보 같다고' 느끼지 않도록 할 수 있고, 그러면 다소의 관계를 만들 수 있겠죠."


"이 병을 우스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거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죠. 조울증이란 상황에 대처하는 삶은 우스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죠.


"일반적으로, 전형적인 조울증인 사람들은 정말로 혼돈 상태가 돼요. 제일 좋은 방법은 같은 병을 가진 다른 사람과 대화하도록 하는 거예요. 조울증 환자는 (조울증을 앓지 않는)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지 않으려 하는데, 왜냐하면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죠."


규칙적으로 약을 먹고 지속적인 치료를 유지하고 모니터하는 것과 함께,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 같은 약을 먹는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체중 증가를 막을 뿐 아니라, 또다른 치료 효과도 있다고 캐리는 말한다. "나는 윗몸일으키기 그리고 그와 비슷한 운동과 러닝머신을 해요. 그러면 2중으로 도움이 되는데, 무언가를 통제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실행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죠.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어요."


그녀는 <The Best Awful>의 1월 출간과 이어진 출판 기념 투어를 대비해 체력을 비축해야 했다. 캐리는 현재 좀 더 전통적인 의미의 소설이 될 다음 작품, 그리고 그녀의 딸에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그녀는 한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장소에 대해서는 더 그렇지만, 아주 오랫동안, 새로운 시작으로 이끈 몰두와 집착은 레아 공주가 선호한 시나몬 롤 헤어스타일만큼이나 먼 과거의 것처럼 보인다.


한때 로드와 이별한 고통에 괴로워했던 캐리는 지금은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관계들을 끝냈고, 누군가를 내 인생에 들이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해요. 어떤 남성이 이 집에 들어와서 일종의 괴로움을 느끼지 않을까요? 나에겐 다른 인간관계가 있고 내 딸을 사랑해요. 그 애는 아이를 입양하자고 해요. 나에겐 그 편이 남자관계를 만드는 것보다 가능성이 높겠죠."


심지어 캐리는 로드와 사이가 더욱 가까워졌고, 두 부모는 딸을 중심으로 플라토닉한 관계를 즐기고 있으며 그녀는 이 관계를 "할리우드식 동반관계, 함께 또 따로"라고 부른다. 한때 그녀를 벼랑으로까지 몰고 간 이별에 대해 농담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나를 떠난 게 여자 때문이 아니었으니, 나는 그에게 여전히 일종의 여자친구지요." 그녀가 짧게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