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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울증 이야기

조울증 환자가 경제적인 문제를 일으킬 때


먼저 아래 동영상을 한 번 보세요.

(조울증 환자인 아내와, 그 남편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작아진 가족 #2 - 플리마켓 셀러가 되다/ 각본, 연출 정용준>




조울증 환자는 왜 경제적 문제를 일으킬까?


조울증 환자는 조증 시기가 오면 씀씀이가 커져 과소비를 하거나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기 쉽습니다. 이것은 지나친 적극성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고 동시에 과도한 자신감이 넘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칩니다. 사고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며, 때로는 일정 부분 논리성을 갖추기도 해서 사업 구상같은 경우 일견 매우 그럴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앞서 보신 동영상에서도 남편이 아내의 사업 활동에 혹해서 휩쓸리게 된 것은 이런 이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제적 문제를 일으킬까?


과소비는 조증 상태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패턴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조울증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과소비에 대해 후회하는 글들이 자주 보입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자면, 지출 내역의 변화만 봐도 조증 시기인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조울증 환자는 필요 없다는 것을 알더라도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나 요즘에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우스 클릭 몇 번만으로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조울증 환자에게는 치명적인 환경입니다.


또 하나 대표적인 것이 충동적인 사업 시작/확장 등입니다.

이 경우에는 자산 처분이나 대출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은 사업 전망에 대해 나름의 논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충동적이고 충분한 준비나 조사의 부족으로 결국 실패하여 빚만 떠안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이 빚이 고스란히 가족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징후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조울증 환자가 경제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조증 시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조증의 징후를 잘 알아챈다면 이런 문제를 예방하거나, 적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조증일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행동을 포함하여 경제 활동에 관련해 다음 중 다수의 징후가 동시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1. 말이 빨라지고 많아진다. 생각과 행동의 전환이 굉장히 빨리, 자주 일어난다.
  2. 감정의 변화가 심해진다.
  3. 자신감이 넘치고 긍정적으로 된다(특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단, 그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다.
  4. 하루가 멀다 하고 택배가 오거나(인터넷 쇼핑을 한다) 물건을 다량 구입하거나 지출이 많아진다. 그런데 구입하거나 지출하는 내용을 보면 필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본인은 꼭 필요하다고 항변한다).
  5. 사업, 주식 투자 등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확장한다(그것도 여러 가지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규모가 본인의 능력을 초과한다(자본, 지속 능력, 사업 전망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 근거가 약하다). 저축, 보험, 부동산 등의 자산에 손을 대거나 심하면 지인에게 빚을 지거나 무리한 대출을 받는다.
  6. 이런 본인의 상태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한다.



대처 방법


경제적, 금전적 문제를 예방하고 대처하기 위한 팁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환자의 지출 내역을 꼼꼼하게 챙긴다. 예를 들면 영수증이나 카드 명세서, 이메일 청구서 등을 점검한다(기분 상하지 않게 잘 해야겠지요).
  2. 도저히 통제가 안 되는 경우 현금이나 카드 사용을 제한한다. 필요하면 카드를 정지시킨다.
  3. 자산 처분이나 대출, 사업에 관계된 일정 규모 이상의 경제문제는 꼭 가족이 함께 상의하여 결정한다.
  4. 병원 치료를 받고, 상태가 심각한 경우 호전될 때까지 입원하는 것을 고려해 본다.


옆에서 보면 속 터지고 어이없는 행동을 환자가 하는 이유는, 대개는 그 사람이 바보라서거나 나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결국, 조울증이라는 병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의사와 상담을 하고 적절한 처방을 통해 조증을 가라앉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만약 다행히도 환자 본인이 조증 초기에 스스로 상태 이상을 감지할 수 있었다면 적절한 치료를 통해 증상이 금방 안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환자가 조울증 진단을 받은 경험이 없거나, 혹은 재발했는데도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에는 반드시 주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이란 대개 가족이 되겠지요.


환자 가족 입장에서는 참 답답하고 때로는 화도 나는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들겠지만,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을뿐더러 가족에 대한 적개심만 키워 서로 상처만 잔뜩 주기 쉽습니다.


내 가족이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지금 많이 '아프기 때문'이라고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


조울증은 다른 정신질환과 마찬가지로 환자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 특히 가족을 힘들게 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가족이 함께 치료에 동참해야 하는 병이기도 합니다.


환자를 지속해서 관찰해야 본인이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때도 증상의 징후를 발견할 수 있고,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관심을 두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너무 멀면 무관심이 되고 지나치게 가까우면 간섭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자에 대한 가족의 태도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