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의 앞면과 뒷면
인간의 본성이 본질적으로 선(善)한가 아니면 악(惡)한가에 관한 논의는 오랜 철학적 주제입니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이러한 논의의 중심에 있는 두 가지 이론으로, 인간 본성의 출발점과 방향성을 규명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성선설은 인간이 본래 선한 본성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견해입니다. 맹자(孟子)를 비롯한 성선설 지지자들은 인간이 본래 선량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선한 행동을 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성악설은 인간이 본래 이기적이고 악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견해입니다. 순자(荀子)나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와 같은 성악설 지지자들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사회적 규범이나 교육을 통해서만 이러한 본성을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인간 본성에 선과 악이 혼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선과 악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복잡한 감정과 욕구의 스펙트럼을 반영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충동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선과 악의 공존은 우리 행동과 선택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하면서, 인간 경험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성선설과 성악설 중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면 인간 본성을 단순화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선과 악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균형을 찾으려 합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이론을 적절하게 수용하여, 인간 본성을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울증을 경험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습니다. 극단적인 감정의 스펙트럼을 경험하면서, 저는제 안에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선함만을 추구하는 것이나, 악함만을 억제하려는 시도는 불완전한 자기 이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저는 선한 면과 악한 면 모두를 인정하고, 그것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방법을 찾아야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관점은 타인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타인의 선한 면과 악한 면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며, 사람을 선과 악으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 본성은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그 안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괴물이 산다
제 안에도 선한 마음과 파괴적인 충동이 함께 존재합니다. 내면의 괴물은 많은 경우 불편함을 초래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 괴물을 이물질처럼 여겨,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 안의 괴물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하자 자기 이해와 성찰이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성선설과 성악설을 넘어, 자신뿐 아니라 인간 본성의 복잡성과 다면성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요즘 드는 생각입니다. 이제야 겨우 나와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는 출발점에 섰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성선설을 지지하든, 성악설을 지지하든 개인의 자유이며 제 생각을 강요할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회색 지대에 서 있으면 꼭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할 뿐만은 아니라, 주변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최근에 했던 생각을 정리해 짧게 올려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