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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울증 치료기

조울증(조증기)에 필요한 습관

 

 

'나쁜 습관이든 좋은 습관이든, 습관은 일단 한 번 몸에 배면 바꾸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왕지사 좋은 습관을 들이는 편이 백 배는 낫지 않겠습니까.

 


[실질적인 생활 습관]

 

  1. 정기적인 진료와 처방약 먹기 / 심리상담 받기
    • 의사의 진료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고 적절한 약을 잘 챙겨 먹는 것은 조울증의 치료와 관리에 가장 기본이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약은 필수이며 신성시해도 좋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 좋은 상담가를 만난다는 전제 하에, 심리상담은 병의 관리와 호전에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됩니다. 다만 비용이 부담인데, 제 경우 2주에 한 번 상담을 받는 것으로 이 부담을 줄이고 있습니다. 여력이 된다면 매주 상담을 받고 싶을 정도로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치료 과정의 하나입니다. 심리상담의 가장 큰 이점은 속에 쌓인 어떤 말이라도 하고 싶은 만큼 다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친구나 가족에게도 하기 힘든 일인데, 상담가는 훈련받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입장을 바꿔보면, 조울증 환자의 이야기를 한 시간 정도 쭉 경청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이기에, 상담료가 비쌀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 술 / 담배 / 카페인 자제
    • 술은 보통 사람에게도 감정과 기분 변화를 심하게 만듭니다. 조울증 환자라면 무조건 끊는 것이 좋습니다.
    • 조증기가 되면 특히 니코틴, 카페인 등 향정신성 물질을 과도하게 섭취하기 십상입니다. 이러한 물질은 각성 효과가 있기 때문에 술만큼은 아니더라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큽니다. 가급적 끊거나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 카페인이 없는 아로마 티 같은 것으로 대체하면 어떨까요.
  3. 돈 열심히 벌기
    • 언젠가 우울증이 다시 돌아왔을 때를 대비해서, 조증기에는 돈을 최대한 열심히 벌고 저축합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떠올려 봅시다.
  4. 돈 쓸 때 무조건 삼세 번 고민하기
    • 조증기의 특징 중 하나인 과소비는 생각보다 자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왠지 꼭 필요한 것 같아 어느새 결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지갑에서 카드나 현금을 꺼내기 전에 세 번 생각합시다. 이미 있는 것으로 해결 가능하지는 않을까? 꼭 필요한 것인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인가? 하고 말이죠.
  5. 수면의 질 높이기
    • 매일 수면 시간을 체크합니다. eMoods와 같은 앱을 사용하면 한눈에 보기 좋은데, 각자 편한 방법으로 하시면 되겠습니다. 만약 잠을 안 자거나 너무 적게 잔 날이 있다면, 약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꼭꼭 충분한 수면 시간을 챙깁시다.
  6. 기록하기(일기 쓰기)
    • 매일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는 어땠는지 꾸준히 기록합시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반성하고 개선할 여지를 꽤나 많이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일기를 쓰는 것의 또다른 장점은 자신의 기분이 어땠는지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내가 너무 오버했구나, 이때는 이럴 만했네 등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좀 더 근본적인 태도에 관한 습관]

  1. 주위 의견 경청하기
    • 조증일 때는 수많은 생각들이 무척 빠른 속도로 뇌를 통과해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생각을 받아들이기가 답답해져서 그냥 자기가 마음먹은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내 생각이 논리적으로 느껴질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사고 회로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생기기도 쉽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충고나 조언을 하는 경우에는 일단 잘 듣고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보통 한 번 정하면 자기 고집대로 하기 쉬운데, 타인의 조언은 그에 대한 브레이크가 될 수 있습니다. 일단 잘 듣고, 그다음에 판단해서 행동해도 늦지 않습니다.
  2. 생각은 충분히, 결정은 신중하게
    • 위 항목과 비슷한 이야기인데, 성급하게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빠른 사고 회로를 잘 활용하면, 더블 체크, 트리플 체크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잘못된 점은 없는지 한 번쯤 의심해 보고, 과거 기록도 참고한다면 실수를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3. 실수에서 배우기
    • 이것 역시 기록의 도움을 크게 받는 항목입니다. 지난 일기를 읽다 보면, '아, 내가 생각해도 이건 너무 어이없다.' 싶은 경우가 많지요. 한참 조증기를 거치고 난 후 우울기가 돌아왔을 때, 지난 실수들을 생각하며 수도 없이 이불 킥을 한 경험, 다들 있으실 것 같은데요(...)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실수에서 뭔가를 배우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하는 것입니다. 조증기의 빠르고 과감한 결단은 장점일 수 있습니다. 그 장점을 살리려면 명료한 판단력을 키워야 하고, 이것은 자기반성과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네요.
  4. 자존감은 높이되 자만하지 말기
    • 팩트와 팩트가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나의 어떤 행동이 잘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간다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지점과 나아갈 방향을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잘 파악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존감은 올라갑니다. 하지만 분명한 실수조차 부정하며 세상 탓, 남 탓만 한다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혹은 자만심만 키울 뿐입니다. 자만심은 자존감을 오염시키지요.
  5. 멀티태스킹을 지양하기(에너지를 집중하기)
    • 조증기에 우리의 뇌는 엄청난 속도로 돌아갑니다. 컴퓨터 용어 중 '오버클러킹'이란 말을 아시나요? 원래 스펙상으로 안정적인 성능보다 더 무리해서 CPU를 돌리는 것을 말하는데, 조증기는 말하자면 뇌가 오버클러킹 되고 있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성능이 좋은 컴퓨터에선 프로그램을 여러 개 동시에 돌려도 일단은 돌아갑니다만, 너무 무리하면 컴퓨터 자체가 셧다운되어 버립니다. 또다른 문제는 조증기가 끝나기 전 그 많은 프로세스들을 제대로 종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일을 잔뜩 벌려 놓고 마무리는 흐지부지, 이도 저도 아닌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뒷감당은 우울기에 빠져 무기력해진 우리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들이 해야만 합니다.
    •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아이디어, 할 일들이 떠오르는 데 어떻게 할까요? 한 가지 방법은, 메모를 하는 것입니다. 뭔가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일단 적어 두기만 합니다. 그리고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우선순위를 매겨 리스트를 만드는 거죠. 이렇게 하면 최소한 중요한 일부터 하나씩 마무리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차분하게 차근차근 말이죠.
    • 멀티태스킹을 피하고 순차적(또는 선형적 linear)으로 일하게 되면 큰 장점이 있습니다. 바로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넘치는 에너지를 한 번에 한 가지 목표에만 집중하게 되면, 일의 효율이 극적으로 올라갑니다. 저는 조증기의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때가 많았는데, 다른 분들은 어떤가요? 조울증을 겪은 유명한 예술가나 정치인은 이 방법을 잘 활용한 게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그들이 인류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이루는 게 가능했던 것은, '집중의 힘'이 아니었을까요. 조울증 환자 모두가 대단한 업적을 남길 수 있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우리의 에너지를 집중해서 잘 사용한다면, 적어도 자신의 삶의 질을 비약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6. 건강한 감정 해소법 찾기
    • 조울증은 '기분장애'의 하나로 분류됩니다. 말 그대로 기분, 감정 제어 능력이 비환자들에 배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바로 이 병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입니다. 사소한 이유로, 때로는 아무 이유도 없이 감정이 널뛰게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민폐지만 우선 환자 본인이 너무도 괴롭습니다. 앞에서 심리상담이 중요하다고 한 것도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조울증 환자에게 절실하면서도 어려운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상담이 부담스럽다면 적어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동호회에 가입하기도 쉽습니다. 그도 아니면 땀흘릴 만한 적당한 운동이나 취미생활 등을 하는 것도 좋겠지요.
    • 조증기에 난감한 점 하나로 성욕이 과도해진다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배우자나 파트너가 있는 경우, 바람을 피우거나 유흥업소 또는 성매매 업소에 빠지는 등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건강한 성욕 해소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위 항목들을 적어 두긴 했지만 물론 100% 다 지키며 살고 있지는 못합니다. 다만 잘 볼 수 있는 곳에 적어 두고, 계속 되새김질하면서 조금 더 많이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없는 다른 습관들에 관한 아이디어나, 또는 다른 생각을 가지신 분들은 댓글로 적어 주시면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께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