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조울증 치료기

안정된 상태 유지하기




최근 저는 스스로도 꽤 안정된 상태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 적응하는 것을 하나의 도전으로도 느낍니다.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평범한 일상이 많이 낯설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본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레드(모건 프리먼)가 장기 복역 후 출소하고 느낀 막막한 불안감 같은 것일까요? 조울증을 겨우 탈출했나 싶었더니 막상 어쩔 줄 모르겠는 불안감이라니. '도대체 이 불안한 기분의 정체는 뭘까?' 하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안정된 상태


조증도 울증도 아닌 상태를 '안정된 상태'라고 하면, 요즘 제가 느끼고 있는 안정된 상태는 이렇습니다.


  • 지난 10여년을 통틀어 이렇게 평화롭게 느껴지는 시기는 별로 없었습니다. 폭풍우가 지나고 보니 호수가 원래 이렇게 잔잔한 거였어? 하고 새삼 알게 된 것 같은 심정입니다.
  • 사람들과 트러블(제 쪽에서 일으켠 적이 많았던)이 적어졌습니다.
  • 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일하는 일상 생활에 특별한 문제가 없습니다.
  • 그런데도 왠지 일상 전반이 재미없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감정 동요가 적어져서? 혹은 외부 자극이 증폭되지 않고 그대로 느껴져서일까요? 조울증이 없는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별 재미가 없을 때가 많은 것일까요?

불안의 이유


그렇다면 한 구석에서 계속 맴도는 불안감의 이유는 무엇인지도 따져 보았습니다.

  • 기분 변동이 거의 없고, 무덤덤한 내가 지금 우울한 상태인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 반대로 조금만 감정이 흔들려도(일상적인 수준의 짜증이나, 슬픈 영화를 봤을 때 기분이 가라앉는 것 등) 조증이나 울증의 전조가 아닐까 하고 문득 겁이 날 때가 있습니다.
  • 지금의 평화가 언제든 깨질 수도 있다는, 조울증의 속성 때문에 생기는 불안도 있습니다.

안정된 상태에서 할 일


이런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안정기에도 다음과 같은 일들을 꾸준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정기적인 진료와 약 챙겨 먹기
  • 규칙적이고 충분한 수면
  • 적당한 운동
  • 스트레스 관리 등 마음 건강 돌보기(전문 상담심리사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 방법)
  • 나에게 잘 맞는 일하기(여러 의미에서)
  • 사람들 만나고 대화하기
  • 좋아하는 것 하기(취미 등)


적어 놓고 보니 첫째 항목 말고는 환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공통사항이네요^^


안정된 상태의 장점


상태가 안정되고 일상이 재미없어진 느낌이 있다고 했습니다만, 결론적으로는 아마도 조울증에 시달릴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자극이 넘치는 삶 보다 지금이 더 좋은 이유가 많습니다.


  • 조증(울증) 때와 비교해 생각이 잘 정리되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가 수월함
  • 어떤 일을 할 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실행하기가 쉬워짐(예전엔 마구 일을 벌여놓고 하나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면, 지금은 할 수 있는 만큼 해 나가는 느낌)
  • 현실적인 감각이 돌아옴. 주변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됨.


조울증을 치료하면 모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질이 확실하게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이상 근황 보고 겸, 저의 요즘 상태에 관한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환우, 가족분들이 있다면 지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자신에게도 여전히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