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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울증 치료기

나의 조울증 치료기(3)


들어가며


2화에서도 달렸지만, 이번 화에서도 여전히 달리는 내용입니다(심지어 더 어두운 내용입니다). 부득이하게 폭주 전차에 함께 올라타시게 만든 것에 대해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최대한 솔직한 심정으로 쓰고 있으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3화를 시작하겠습니다.




조울증 삽화[각주:1](1)


학원 강사 일은 즐거웠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적성에 맞았고, 마음 맞는 선생님도 많아서 마음이 편했죠.

더불어, 학원 선생님 한 분과 연애도 했습니다. 그만큼 분위기가 자유로운 편이어서,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아주 심한 우울증이 돌아왔습니다. 똑똑하고 명랑해 보였던 저는 갑자기 바보처럼 변했습니다.





학생들 앞에서 버벅대며 위태롭게 수업을 유지했고, 연애도 곧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마 당시 여자 친구는 ‘사랑이 식어버렸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좀 달랐습니다. 모든 것에 대한 반응이 둔해지고 무감각해졌습니다. 평범한 대화도 이어 나가기가 힘들었습니다. 거기다 대인기피 증상까지 심해졌습니다. 제대로 연애가 될 리가 없었습니다.

헤어지면서, 간신히 조울증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이 병을 잘 설명하지 못해서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였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원 생활도 끝장났습니다.




조울증 삽화(2)


2~3개월의 심한 우울기가 온 다음은 극조증 시기가 바로 따라왔습니다. 같이 살고 있던 부모님과는 사사건건 싸우기 일쑤였고, 마침내 집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저는 뜬금없이 택배기사 일을 시작했습니다(돈을 빨리 모을 욕심에 바로 시작한 일자리였습니다).


택배기사 일은 무거운 짐을 계단으로 나르거나, 시간 내에 많은 물량을 처리해야 하는 꽤 힘든 육체노동입니다. 이 부분은 차라리 나은 편입니다. 문제는 이 일이 굉장히 심한 ‘감정노동’이란 점이었습니다. 택배를 시킨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재촉해 대기 일쑤였고, 왜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오지 않느냐고 따졌으며, 택배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심한 욕설을 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2,500~3,000원 택배비 내면서 갑질이란 갑질은 다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여러분, 택배기사분들 엄청 고생하십니다. 좀 늦는다고 화내거나 욕하지 마세요^^).

하지만 노동 강도에 비해 수입은 좋지 않았습니다(여기엔 지점장의 장난질 탓도 있었습니다). 결국, 지점장 엿 좀 먹어라, 하는 심정으로 연락을 끊고 안 나갔습니다.

그래도 모은 얼마간의 돈과 저축을 합쳐 간신히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었고, 크리스마스 직전에 집을 나왔습니다.




이사를 하고, 부모님과 싸움에서 해방되었다는 안도감도 잠시, 막상 앞으로의 생활비가 막막하더군요. 뒷일을 미리 생각하지 않은 탓이죠.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다행히 선배 소개로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한 것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회사 규모가 작다 보니 제가 혼자 해야 할 업무가 생각보다 많았다는 점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를 넘으면 쉽게 우울증이 왔던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에 굉장히 취약한 것이겠죠. 그리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것은 조울증 환자의 일반적인 특성이기도 합니다.

사는 게 너무 바쁘면 우울증 올 겨를도 없다고 얘기하는 지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울증이나 우울증은 거듭 말씀드렸듯이 ‘뇌신경계 이상으로 인한 병'입니다. 본인의 의지만으로 조절하기가 매우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결과적으로 다시 심한 우울증이 왔는데, 이번엔 아마도 업무 스트레스가 주원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감당하기 벅찬 수준의 업무, 계속된 야근, 그로 인한 피로의 누적.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이제는 패턴이 되어 버린 수순대로 우울증은 근무 태만과 무단결근으로 이어져, 어느 날인가부터는 결국 회사를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우울증은 이전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수입이 제로가 되었는데, 부모님과 연락을 끊은 채 자취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지할 곳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욕까지 바닥난 상태로, 자취방이라는 무인도에 홀로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 자살하자!




그래도 두 달 정도는 통장 잔액을 아끼고 쪼개서 어떻게든 버틸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떨어지자 먹을 것은 물론, 인터넷, 핸드폰, 도시가스가 순서대로 차례차례 끊어졌습니다. 그나마 전기가 마지막까지 안 끊긴 건 다했이랄까요.
배가 고파서 남은 설탕을 퍼먹었습니다. 밤에 인적이 드물어지면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사람들이 조금 피우고 버린 담배를 주워 피웠습니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 누군가 먹다 남기고 간 간식거리를 남의 눈에 띌새라 들고 온 적도 있습니다. 거의 노숙자 비슷한 생활이었습니다.


8월 말 즈음, 가장 더울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에어컨은 틀 수 없었고, 꼭대기 층이라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더웠습니다. 의욕상실에, 배는 너무 고파서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 봤지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일당 받는 일이라도 하면 되잖아?" 하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극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사람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서 낮에는 밖에도 못 나갈 지경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차츰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살을 생각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냥 생각만 든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간절히 죽고 싶었습니다.

과거 아무리 심한 우울기에도 자살을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살기 싫다' 정도까지는 몰라도 진짜로 죽고 싶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죽고 싶은 마음은 진짜였는데도, 자살 자체나 방법에 대해서 주저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기독교 신앙 때문에 종교적 이유로 자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 자살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남긴다.
  • 자살하면 누군가는 내 시체를 발견할 텐데, 민폐가 될 것이다.


저는 어지러운 머리로 자살 방법에 대해 고민합니다.


목을 맬까? 혀가 튀어나오거나 목 부분이 상해서 보기에 끔찍하다던데.

아니면 투신자살? 이건 확실하게 죽는 방법이긴 한데 모양새가 너무 끔찍해서 상관없는 사람이 충격 받을 테니 안되고.

번개탄을 피울까? 그런데 혹시 불이라도 나면 이웃과 집주인한테 이런 민폐가 어딨어?

높은 다리에서 뛰어내릴까? 아… 나 수영할 줄 알지…


이리저리 궁리해 봐도 ‘곱게’ 자살할 방법은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이 ‘굶어 죽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먹을 게 없기도 했고, 결정적으로는 굶어 죽는 방법이 그나마 소극적인 방법이니 앞서 마음에 걸렸던 종교적인 금기를 어기지 않을 것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난 현장 등에 고립된 사람이 음식을 못 먹어서가 아니라 물을 못 마시면 며칠 못 버티고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결정한 방법은 ‘물을 마시지 말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물을 안 마시는 건 생각보다 엄청나게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한여름, 덥다 못해 뜨거운 방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목마름이 말도 못하게 심했습니다.
하루는 어떻게든 참았지만, 이틀째 수돗물을 마셨습니다(1차 시도 실패).
그다음 날 다시 시도해서 하루를 또 참았지만... 결국은 수돗물을 다시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번에는 그냥 먹기 좀 그래서 전기 포트에 끓여 먹기까지 했습니다(2차 시도 역시 실패).


생존본능은 정신적인 탈진상태를 압도했습니다. 사실은 살고 싶었던 마음도 어딘가 있었을 테지요.

이 꼴을 본 누군가가 있었다면, 개그가 따로 없다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능하지도 않은 방법으로 자살 시도를 한 것이 무슨 헛짓거리냐며 말이죠. 하지만 이때 진심으로 죽고 싶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일로 자살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아주 개인적인, 자살에 대한 저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동의를 강요할 의도는 없습니다. 반대로 자살을 긍정적으로 보거나 유도, 응원할 생각도 없습니다.)


  • 진심으로 자살 시도를 하는 사람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편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두렵다. 따라서 "자살할 용기로 차라리 열심히 살아라", 라는 논리를 펴는 사람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의 심리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 남겨진 사람들에게 슬픔과 트라우마를 준다는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오히려 자살을 마음먹거나 실행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이 미리 관심을 갖고, 자살을 예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있을때 잘 하라는...).
  •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생존 본능이 마비되었거나 정신적인 탈진 상태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설명이나 설득이 잘 통하지 않는다.
  • 위와 비슷한 이유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덮어놓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식의 (설득하는 본인도 납득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해 봐야 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갈 이유와 희망이며, 이는 대개 단 하나의 진실한 인간관계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돌아온 탕아


서른도 넘은 나이에 부모님에게 반항하여 집을 나가고, 연을 끊겠다고 (혼자) 선언하고, 결국 조울증에 휘둘리다 자살 시도 비스름한 촌극을 벌이고 난 뒤.


"Loser!(패배자)"



결국 저는 부모님에게 항복합니다.


우선 너무 배가 고파서 돈을 보내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핸드폰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까운 카페 근처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잡고, 카톡으로 연락을 했습니다. 자신의 비굴함에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죠.
송금받은 돈으로 우선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죽겠다며 생각한 것은 다 무엇인지,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이 들어가자 ‘이제야 살겠네’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며칠 후 추석 때 부모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너무 의욕이 없어서 이사도 안 하고 몸만 갔습니다.
3개월 정도 지나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가 되어서야 자취방 짐을 다 빼서 제대로 이사를 했습니다.






3화를 마치며


이번 화에는 후반부가 주로 자살 얘기라서 부담스러우셨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조울증은 자살과 무척 관계가 깊은 병입니다. 그래서 무리라고 생각하면서도 굳이 많은 양을 할애했습니다.


제 경우는 촌극으로 끝나서 다행이지만, 더 위험하고 심각한 케이스가 많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실려 오는 조울증 환자가 적지 않습니다.

어둡고 무거운 주제라고 피해갈 것이 아니라, 이참에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4화에서 계속)





  1. 삽화(episode): 조증이나 울증의 시기 또는 사건을 지칭하는 전문용어. 개인적으로는 우리말로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아 새로 번역하길 바라는 용어입니다. [본문으로]